[희망이음 함께하는 내일]툭하면 ‘이방인’ 취급…우리도 한로로·뉴진스에 빠진 청소년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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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 물러나고 따뜻한 봄기운이 돌던 2008년 2월 어느 날, 서울 서대문구에서 윤태리양(18·가명)이 태어났다. “소중한 딸이죠.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딸.”
윤양 어머니의 이름은 쯔엉 티투남(41). 베트남 남부 박리에우에서 태어난 그는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한국인 남편을 만나 2007년 한국으로 왔다. 부부는 윤양과 15세, 9세 아들 둘 등 삼남매를 키우고 있다.
윤양은 일곱 살 때 자신의 어머니가 다른 집 부모님과 다르다는 점을 처음 알아챘다고 했다. 쯔엉씨의 한국어 발음은 친구들 부모님이 말하는 방식과 달랐다. 윤양은 같은 반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남자애들이 막 놀리는 거예요. 친구들 주려고 베트남에서 간식을 사 왔는데 간식을 바닥에 던지고 밟았어요. 많이 울었고 계속 싸웠어요. 그때부터 제가 다문화청소년이란 걸 말 안 했어요.”
▲쯔엉 티투남씨의 딸 윤태리양
베트남 간식 선물 바닥에 던진 친구그 이후 다문화청소년이란 말 안 해
한국은 1990년대부터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 도입과 국제결혼이 주요 원인이다. 법무부는 산업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1991년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사증 발급 등에 관한 업무지침’을 개정했고, 3년 뒤 2만명의 첫 산업연수생이 입국했다. 농촌에서는 국제결혼 중개업체가 성업을 이뤘다. 1990년 4710건이던 국제결혼은 2000년 1만2319건으로 10년 만에 약 2.6배로 늘었다.
대한민국은 다문화 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을 제정했다. 이주민과 다문화청소년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한 취지의 법이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은 ‘한국인과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24세 이하 청소년’을 다문화청소년으로 규정한다. 이 법에 근거해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다문화가족 구성원을 돕기 위한 가족센터를 세우고,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는 3년 주기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다문화청소년은 꾸준히 늘고 있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2010년 3만40명에 불과하던 국제결혼가정의 초중고 학생은 2020년 12만2925명으로 4배 넘게 늘었고, 지난해 이들의 숫자는 14만9332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초중고 학생의 약 2.9%에 해당한다.
경기 안산시에 사는 박동현군(18)도 다문화청소년이다. 캄보디아 출신 어머니 속파오시다씨(44)는 2007년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왔고, 2011년 귀화했다.
박군은 지난 2월7일 안산 상록구 감골도서관 인근의 한 카페에 EBS 수능특강 등 문제집 여덟 권을 들고 왔다. 사범대 진학을 목표로 매일 도서관에서 오전 9시부터 저녁까지 자습하는 박군은 쉴 때는 싱어송라이터 ‘한로로’나 걸그룹 ‘뉴진스’의 노래를 듣는다.
부모님은 박군이 어린 시절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했다가 주위에 밉보일까 걱정했다. 속파오시다씨는 “예전엔 목욕탕에 가면 옆에 앉았던 사람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며 “동현이의 외모나 피부, 말투가 혹시 나를 많이 닮지는 않을까 걱정한 적도 있다”고 했다.
박군은 부모님의 걱정과 달리 어린 시절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지만 이방인 취급을 받은 경험이 있다. 가족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신기하다” “캄보디아 말 할 줄 알아?”라는 반응을 종종 보였다.
▲속파오시다씨의 아들 박동현군
가족 이야기에 “신기하다”는 반응부모님은 늘 주위에 밉보일까 걱정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나 안동시에서 자란 김정화양(18)도 ‘다른 나라 사람’으로 여겨진 적이 있다.
2019년 한국과 일본 간 외교 갈등이 심화하자 ‘노 저팬(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었다. 당시 11세였던 김양은 교실에서 “너는 일본 사람인데 왜 한국 걸 쓰냐?” “확실히 펜은 일제보다 한국산이 좋아”라는 말을 듣고 상처를 입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큰 공연장에서 태평무를 출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에게 한국무용은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상처를 견디며 어떤 꿈을 꿔왔는지를 가장 진솔하게 보여주는 언어입니다. 춤 안에는 저의 혼란과 치유, 두 문화 사이에서의 고민과 선택, 그리고 정체성을 향한 끊임없는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무대에서 편견을 넘는 정체성을 증명하며 한국무용이라는 전통에 저만의 색을 더해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는 김양은 지난해 ‘전국 다문화가족 자녀 이중언어대회’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자신의 성장 배경과 꿈을 발표했다.
경상북도가족센터가 주관하고 경북도와 삼성전자 구미 스마트시티가 후원한 이 대회는 다문화청소년이 다양한 문화 정체성을 지닌 채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에서 열렸다. 2008년생 이주배경청소년들이 성장하는 동안 한국 사회도 조금씩 변했다. ‘한국인은 단일 민족’이라는 전제조건이 포함된 ‘혼혈’이라는 단어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TV 프로그램에서는 이주민을 희화화하는 개그도 자취를 감췄다.
▲이시가미씨의 딸 김정화양
한·일 갈등 때 “넌 일본사람” 상처한국무용 꿈 키우며 나만의 색 찾아
몇몇 교사들은 교육 현장에 이주배경청소년을 포용하기 위한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2012년 결성돼 100여명의 교사와 40여명 연구원이 활동하는 ‘경기도다문화교육연구회’가 대표적인 예다.
이주배경청소년을 향한 ‘특별한 시선’도 점차 옅어졌다. 놀림받은 이후 5년간 자신의 가정사를 밝히지 않은 윤태리양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야 자신이 다문화청소년임을 주변에 알릴 수 있었다. 학교에서 이주배경청소년을 흔히 볼 수 있게 되면서다.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세 명의 다문화청소년은 한국 사회가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김양은 “‘다문화청소년’이라고 하면 특별한 존재로 여기거나 때로는 불쌍한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며 “다른 청소년을 보듯 똑같이 우리를 바라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시행되며 생긴 가족센터 운영 방식도 점점 체계화됐다. 가족센터는 이주민에게는 직업훈련과 양육 교육 등을, 다문화청소년에게는 진로 상담과 방과 후 보충 학습 등을 지원한다.
가족센터에서 가장 활발히 진행되는 사업은 한국어 교육이다. 쯔엉씨와 속파오시다씨, 김양의 어머니 이시가미 아야노씨(42) 모두 각 지역의 가족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사회복지기관에 가족센터를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센터는 성평등부와 지자체 예산을 받는다.
2009년 가족센터를 처음 찾아간 쯔엉씨는 “태리가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입학 준비, 부모 교육, 사춘기 자녀 양육 교육 같은 건 없었다”며 “또 이주민은 고향 한번 가려면 돈이 많이 들어서 스스로 돈 벌길 원하는데 요샌 직업훈련 교육도 잘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살이 20년차인 쯔엉씨는 이제 가족센터에서 다른 베트남 이주여성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공공기관 종류, 한국 음식 요리 방법, 온라인 학교 알림장 ‘e알리미’ 보는 방법 등 생활 전반에 필요한 지식을 알려준다.
쯔엉씨는 2023년 베트남 출신 임신부였던 A씨와 병원에 갔고, 분만실에 들어가 A씨와 의료진 간 소통을 돕기도 했다.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지 30년이 넘었지만 이주민과 다문화청소년은 한국 사회로부터 ‘완벽한 한국인’이 되길 강요받고 있다. 베트남, 일본, 캄보디아 등 각국에서 온 엄마들은 자녀가 한국 사회에 녹아들길 바라며 밤낮으로 낯선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했다.
부모님과 한국어로만 대화해 박군은 캄보디아 공용어인 크메르어를 구사할 수 없다. 속파오시다씨는 “나보고 자기 나라 말 하지 말란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자녀가 한국말을 못해서 ‘왕따’당하진 않을까 걱정됐다”고 말했다.
쯔엉씨가 귀화하면서 한국 이름을 별도로 지은 이유도 자녀들이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시부모님은 태리가 한국어를 못할까 걱정해서 베트남 말을 하지 말라셨어요. 베트남 동요도 시부모님 없을 때 몰래 불러줬고요.” 윤양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매년 베트남에 방문했지만 손짓이나 인공지능(AI) 번역기에 의존해 외가 친척들과 소통한다.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시가미씨는 “정화가 어렸을 때에는 한국어를 쓰려고 애썼다”며 “일본어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한국어로 해야지’ 말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엄마의 일본인 친구들과 자주 만나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김양은 두 나라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이시가미씨는 지금은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딸과 소통한다.
성평등부의 2024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가족이 모국어를 사용하도록 격려하는가’란 질문에 이주 배우자 45.5%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그렇다’는 응답자는 26.5%에 그쳤다. ‘자녀와 모국어로 자주 대화하는가’란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 52.8%, ‘그렇다’ 21.1%로 응답률이 두 배 이상 차이 났다.
보고서는 “자녀가 이주 배우자의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가족들의 격려 점수가 2021년보다 낮아져 자녀의 이중언어 지지 환경이 약화됐다”며 “가족 내 이중언어 사용 조사 결과는 2021년과 유사한 수준이고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다문화 정책이 외국 문화 유입을 존중하고, 폭넓은 범위의 이주배경청소년을 포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거나 북한이탈주민 부모를 둔 청소년, 외국 국적의 해외동포 청소년 등은 다문화가족지원법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 관심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정의하는 ‘다문화가족’ 범주가 유엔 등 국제기구 권고 범위보다 좁다면서 “난민 신청자나 난민을 포함한 이주민 가족은 다문화가족지원법상 다양한 지원에서 제외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18년 한국 정부에 다문화가족 정의에 가족 구성원 중 최소 한 명이 외국인(외국인 부부, 동포 가족 등)인 경우로 확대해 차별 없이 모든 가족에게 동등한 혜택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귀어를 꿈꾸던 직장인 박상현씨(38)는 최근 그 계획을 접었다. 어린 시절 바닷가 마을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에 어촌 정착을 고민했지만, 어선과 어장 확보에 드는 비용과 외지인이 쉽게 들어가기 어려운 어촌계 현실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이달 들어 중동 사태 여파로 면세유 가격까지 치솟으면서 바다에 들어갈 엄두를 내기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박씨는 “수억 원씩 빚을 내 어렵게 배를 띄워봤자 기름값 내기도 벅찬데, 어떻게 미래를 걸겠느냐”고 말했다.
어촌의 ‘노동력 붕괴’가 가속화하고 있다. 어업인 연령대는 갈수록 높아지는 데 반해 빈자리를 메울 청년 인력 유입은 사실상 멈춘 상태다. 고유가 악재까지 겹치면서 어업 현장의 부담은 더 커졌다. 이대로라면 5~10년 뒤 수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해양수산부와 전남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남 어업인구는 3만2268명(1만5611가구)으로, 전국(8만3963명)의 38.4%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에서 2014년 전남의 어업인구는 5만1081명이었다. 10년새 1만8813명(36.8%)나 줄어 같은 기간 전남 전체 인구 감소율(4.1%)의 약 9배에 달했다. 농가인구 감소율(17.5%)과 비교해도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어촌 인력이 빠르게 줄고 있다는 의미다.
전남은 국내 수산업의 중심지다. 어선이 드나드는 어항이 1095개로 전국 2299개의 절반(47.6%)에 달한다. 수산물 생산량도 전국의 60% 안팎을 차지한다. 전남 어촌의 인력 감소가 지역 문제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귀어인 수도 갈수록 줄고 있다. 전남 귀어인 수는 2022년 388명(297가구)에서 2023년 344명(279가구), 2024년 248명(194가구) 등으로 줄었다. 전국 귀어인도 같은 기간 951명, 716명, 555명으로 감소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지난해 정확한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감소세 자체에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층 귀어인은 찾아보기 드물다. 2024년 전남 귀어인의 평균 연령은 53세였다. 50~60대가 귀어인 전체의 63.4%를 차지한다. 청년 귀어를 늘리겠다는 정책 취지와는 정반대 흐름이다. 기존 인력도 고령화가 심각해 70세 이상이 29.6%, 60대 이상이 33.8%로 60~70대가 전체의 63.4%를 차지했다. 40세 미만은 13.2%에 그쳤다.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 귀어 정착 지원금과 창업 융자, 교육 프로그램 등을 내놓고 확대하고 있지만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청년 유입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높은 초기 비용과 닫힌 진입 구조가 꼽힌다.
양식업은 어장과 시설, 종묘·사료비 등이 필요하다. 어선어업 역시 배와 면허, 어구를 갖추는 데만 수 억원이 든다. 창업 융자가 있어도 담보와 상환 부담이 뒤따라 청년들 사이에선 “시작부터 빚을 떠안는 구조”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외지인이 어촌계에 가입하려면 거주 기간 충족과 가입비 납부 등을 요구받고, 가입 뒤에도 주요 어장 배분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촌의 열악한 주거·의료·교육 여건도 정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란 사태로 불거진 면세유 가격 상승은 청년층 유입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어업용 면세유 가격은 지난 한 달 새 드럼당(200ℓ) 10만원 이상 올랐다. 현장에선 기존 어업인들조차 기름값 부담에 배를 묶어두는 상황에서, 대출을 안고 시작해야 하는 청년들이 버티기는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전남 서부권으로 귀어한 A씨(40대)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기름값 급등에 배를 묶어두고 출항 시기만 보고 있다”며 “어획량까지 줄어 빚 갚기는커녕 생활비조차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남연구원은 5~10년 안에 어촌사회의 노동력과 기술 승계 기반이 축소돼 어촌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개별 지원을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흐름을 바꾸기 어렵고, 어업 자원을 공유하고 귀어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식으로 정책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전남연구원 관계자는 “정책의 초점을 지원 확대보다 실제 정착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에 둬야 한다”며 “청년 귀어 거점을 만들고, 진입 장벽을 낮추고, 어촌계 규칙도 더 개방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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