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대형로펌 [서영채의 인 / 문학 현장]괴물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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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삶의 기본 원리는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라는 말 뜻은 공리라는 발음 때문에 종종 오해되곤 한다. 흡사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공리(功利)라는 말은 쓸모(utility)의 옛날식 번역어로서, 그것을 추구하는 힘으로서의 공리주의란 쓸모주의, 소용주의, 유용성주의라고 해야 말의 본래 뜻과 부합한다.
공리주의 시대 부모는 어린 자식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쓸모란 공동체나 사회를 전제해야 성립하는 개념이다. 자기 자신에게가 아니라 남들에게 유용해야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 그래야 직업을 얻고 사업을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면 훌륭한 일이다. 우리 시대 부모의 또 다른 훈육훈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들킬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혹은 들킬 수밖에 없으니까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기도 하다. 거짓말은 개인의 신용에 치명적이다. 신용 없는 사람은 사회 생활이 어려워지고 결국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이런 수준에서 본다면, 공리주의의 공리가 ‘공공의 이익’(公利)과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게 된다.
공리주의 이념이 작동을 멈추는 지점이 있다. 욕망이나 의지가 사람의 목숨과 관련되어 있을 때가 그렇다. 전쟁이 대표적이다. 공리주의는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의 증진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 전제되어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이다. 전쟁이라는 수단은 사람들의 고통과 목숨의 투입을 필요로 하며 생명의 소멸을 초래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윤리가 한계에 도달하는 지점이다.
목숨을 바친다 하더라도,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에서는 숭고감이 만들어진다. 이들의 행위는 공리주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서, 좋든 나쁘든 경외심을 자아낸다. 그런데 자기의 행복과 이익 추구에 목숨을 건다면, 게다가 자기 자신의 편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희생하게 한다면 어떨까. 전쟁에서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것은 자기 모순으로 파열하는 공리주의, 일그러진 괴물의 형상이다. 속물과 바보 너머의 괴물.
2.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침공을 계기로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광인 모드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그로테스크한 괴물을 본다. 그의 허풍과 속물 근성이 한 개인의 차원이라면 웃고 말 일이다. 그러나 그의 변덕스러운 말 한마디에 국제유가와 환율이 춤을 추고 세계 경제가 출렁인다. 미군 통수권자로서의 결정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다. 한 달 넘게 페르시아만에 갇혀 있는, 6척의 크루즈선을 포함해 2000척이 넘는 배들의 신음이 호르무즈 해협을 건너온다.
휴전 후에도 여전히 진행되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베이루트에서는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시인 황지우가 베이루트의 참상에 대해, “통곡의 벽 안쪽은 그 벽 밖의 통곡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라고 썼던 것은 이미 1980년대의 일인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베이루트는 폭격을 당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지역 깡패 노릇을 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때 서방 세계의 맹주이자 세계의 경찰을 자처했던 미국은 이제 노골적인 국제 깡패가 되었다.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나. 사업가 트럼프는 어쩌다 이런 괴물이 되었나.
까닭은 자명해 보인다. 속물 사업가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절대반지를 지니게 되었다는 점, 세계 최강 군사력과 행정 권한을 자기 이익을 위해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문제다. 미네소타에서는 시민 두 사람이 연방정부 공권력에 의해 공개적으로 사살당했다. 국민 주권이 처형당한 것과 다름없는데도 아직까지 제재가 없다. 또한 타국의 침략과 내정간섭의 배제를 원칙으로 하는 국가 주권의 원칙은 우리 시대의 국제적 자연법에 해당한다. 이란 내부에서 벌어진 시민 학살은 끔찍한 것이지만 그것은 자기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문제이다. 트럼프가 자국의 안위와 무관한 원거리 전쟁을 감행한 것은,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것일 뿐 아니라 국제적 자연법 원리에 대한 전면적 파괴 행위다.
절대반지의 오용 결과는 현재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 패권을 얻은 미국은 냉전체제 해체 이후로 명실상부한 유일 패권 국가로 등극해, 도덕적·문화적 헤게모니를 행사해왔다. 트럼프가 노출한 미국의 도덕적 파산은 전쟁 중에도 이미 국제정치 지형의 심각한 변화를 초래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은 이제 세계 경찰이라는 압도적 지위에서 하야함으로써, 아시아와 유럽 동맹국들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근대 이후 패권 국가들의 쇠락은, 노동생산성이 금융 자본의 성과를 따라잡지 못할 때 생겨나곤 했다. 거듭되는 전쟁으로 국력을 낭비하고, 금융업의 약 기운에 취해 제조업 혁신이 중단된 것은 영국의 경우였다. 1945년 이후 이제 80년이 넘어가고 있는 미국 패권의 성세도 유사한 길을 가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 앞에 펼쳐지는 트럼프의 광인 모드는 미국의 미래를 보여주는 증상에 해당한다. 속물과 바보가 겹쳐질 때 괴물은 탄생한다. 배타적 이익 추구의 속물성이 유권자들의 맹목성과 결합할 때 괴물은 이미 잉태되어 있었다.
3.
우리가 트럼프를 비난할 수는 있지만, 그를 선출한 미국 시민들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우리 역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사람들인 까닭이다. 대통령의 수준이 그 나라의 수준이라고 미국 체제를 경멸할 수는 있겠다. 윤석열이나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해서 경멸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투표 결과에 따르는 정치적 책임은 주권자로서의 국민 전체가 져야 한다. 우리가 미국의 레짐을 경멸하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 신기해하지 않아도 된다. 속물과 바보가 겹쳐졌을 때 탄생하는 괴물의 모습과 그에 맞섬으로써 만들어졌던 민주주의 회복력을, 우리는 이미 확인하고 실현한 사람들이다.
속물과 바보는 공리주의 세계의 두 극점에 해당한다. 둘은 각각 이익/지혜와 무지성/올바름을 대표한다. 속물은 자기 이익을 향해, 바보는 그 반대를 향해 가는 것이 기본 속성이다. 이익이 무엇인지를 아는 속물은 영리하고 계산이 빠르다. 우직한 바보는 가슴이 뜨거운 형용사형 인간인 반면, 속물은 각잡기를 좋아하는 명사형 인간이다. 바보가 전사의 심장을 지닌 존재들이라면, 속물의 전형은 차가운 머리를 지닌 합리적인 사업가이다.
속물도 바보도 단순할 수는 없다. 속물은 최소 세 종류가 있다. 자신의 본성을 위장하는 위선적 속물, 감추려 하지 않는 노골적 속물, 자기 본성을 깨닫고 절제하려 하는 현명한 속물. 세 번째 단계에 이르면 속물은 지혜로운 현인으로 고양된다. 바보도 최소 세 종류를 상정할 수 있다. 단순한 바보, 자기의식을 지닌 바보, 자기 본성에 괴로워하면서도 그 길을 회피하지 않는 바보. 세 번째 단계의 바보는 거룩한 존재, 성자가 된다.
현인과 성자는 속물과 바보의 반면들이다. 자기 본성에 대한 응시를 통해 세상의 허실을 터득한 현인은 자기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것이 좀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세상의 이치를 아는 현인-속물은 사람들과 공동체의 좋은 멘토가 될 수 있다.
이익의 반대편을 향해, 손해와 고통과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거룩함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 예수가 그 상징의 정점에 있으나, 그의 이름을 참칭하는 사기꾼들과 충동의 윤리를 오인하는 광인들이 세상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있는 형국이다.
궁극적인 단계에 도달하면 바보-성자와 속물-현인은 한 몸이 되지만, 낮은 단계에서 결합하는 속물의 영혼과 바보의 몸은 다양한 괴물 탄생의 묘판이 된다. 이익의 축적으로 막아낼 수 없는 공허와 불안이 속물과 바보를 괴물로 만든다. 트럼프와 네타냐후에게서 보듯이, 힘을 가진 괴물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은 세계의 행복에 치명적이다. 우리 시대 윤리 기준의 최종 보스는 사람의 목숨이다. 까닭없이 그것을 빼앗겠다고 덤비면 어떤 도덕률도 이념도 감당할 수 없다. 나라 안팎에서 다양하게 출현하는 괴물의 모습을 목격하는 나날들이다. 바라건대,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하루바삐 평화가 오기를.
시대에 응답하며 덧쓰여 온 경전종교가 폭력·배제 정당화하는 데증거 텍스트로 쓰는 도구이기도
본질 잃고 축자적 해석 집착 세태“체제 뒷받침 아닌 책임 물어야복음은 본질적으로 전복적인 것”
“전투적 무신론자는 창조 신화가 최근의 과학적 발견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서를 거짓말투성이라고 비난해 왔으며, 반대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는 <창세기>가 모든 세부에서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창조 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지하드 전사들은 쿠란에서 범죄적 테러 행위를 뒷받침하는 구절을 인용한다. 종교적 시온주의자들은 성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적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증거 텍스트’를 인용한다.”
오늘날 경전은 배제와 폭력을 부추기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모든 일은 경전에 오명을 남겼다. 종교와 문명의 역사를 탐구해온 저명한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문제는 경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문자 그대로, 자기 입장에 유리한 증거로만 끌어다 쓰는 협소한 읽기 방식에 있다고 지적한다. 미토스(신화)를 버리고 오직 로고스(이성)만을 동력으로 삼은 근대인의 정신이 경전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축자적 해석에 갇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경전의 탄생>은 종교적·철학적 사유가 ‘경전’이라는 형식 속에서 어떻게 빚어지고 변화했는지 추적하는 역사서다. 아담과 하와 이야기에 영향을 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혜’ 전승부터 기독교 성경, 이슬람의 쿠란, 중국의 유교 경전, 인도의 베다 전통, 유대 랍비들의 탈무드, 여기에 불교의 경전까지 주요 종교 전통의 위대한 경전들을 시공간을 종횡하며 펼쳐낸다.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경전이 처음부터 완결된 채 주어진 고정불변의 교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유대교 경전은 나라의 멸망 같은 큰 사건들을 겪으며 편집된 텍스트였다.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에서 따로 전해지던 이야기와 율법, 예언의 전통은 아시리아와 바빌론의 침략,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바빌론 유수, 페르시아 시대의 귀환과 재건을 거치며 차츰 한데 엮였다. 공동체는 이런 파국을 겪으며 자신들의 기원과 고난의 의미를 끊임없이 다시 썼고, 그 축적이 곧 경전이 됐다. 기독교 성서 역시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에 대한 기억이 여러 복음서와 서신, 초기 공동체의 해석과 논쟁을 거치며 정전의 형태를 갖춘 결과물이었다. 쿠란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내려진 계시가 공동체 안에서 살아 있는 언어로 구전되었고, 이후 정리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경전은 공통적으로 사회 정의와 공평, 공동체의 윤리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물었다. 경전은 시대의 재난에 응답하며 공동체가 끊임없이 덧쓰고 해석해온 ‘현재진행형’의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경전은 눈으로 읽고 공부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체득하는 것이었다. 히브리 성서는 공동체의 낭송과 의례 속에서 살아났고, 쿠란은 이름 자체가 암송을 뜻할 만큼 목소리와 청취의 텍스트였다. 인도의 베다는 운율과 음가를 지닌 성가로 전승됐으며, 불교 경전 역시 독송과 명상, 의례의 반복 속에서 몸에 새겨졌다. 경전은 눈으로 훑는 문장이 아니라 소리이자 노래였고, 침묵이자 의례였으며, 인간을 문자 너머의 깨달음으로 이끄는 ‘경전 예술’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전의 형식이 근대에 이르러 크게 바뀌었다는 데 있다. 종교개혁의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서)는 타락한 교회에 맞서 성서를 신앙의 근거로 되돌리려는 시도였지만, 그 과정에서 경전은 따지고 판정해야 할 텍스트로 바뀌기 시작했다. 떡과 포도주의 성찬을 두고 “이는 내 몸이다”라는 말을 은유와 암시로 볼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지 논쟁이 벌어진 것은 그 변화를 보여준다.
계몽주의의 ‘솔라 라티오’(오직 이성)는 이 경향을 더욱 밀어붙였다. 한국 보수 기독교와도 밀접한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이 흐름을 극단으로 밀고 나간 결과였다. 진화론과 신학적 현대주의에 맞서 성서의 무오성과 축자적 권위를 내세운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뒤 천년왕국이 열린다고 보는 ‘전천년주의’와 결합하며 근대의 혼란 속에 놓인 신자들에게 강한 확신과 위안을 제공했다. 1925년 미국에서 진화론 교육을 둘러싼 ‘스코프스 재판’은 근본주의 진영을 문화적으로 수세에 몰아넣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공적 공간에서 물러난 근본주의는 자신들의 교회를 중심으로 재편됐고, 성서 축자주의는 더 강한 정체성의 언어가 됐다. 그 반동 속에서 <창세기>를 6000년 전의 실제 역사로 읽는 창조론적 독법이 근본주의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슬람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사우디 왕가와도 관계가 깊은 18세기 아라비아의 와하비즘은 초기 이슬람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자는 개혁 운동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근대의 충격과 식민지 경험을 거치며, 경전을 경직되게 읽는 반동적 흐름이 힘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쿠란의 일부 구절은 역사적 맥락을 잃은 채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소환됐고, 지하드 역시 자기 수양과 윤리적 분투를 포함하던 더 넓은 뜻에서 무장 투쟁의 의미로 축소됐다.
암스트롱이 끝내 복원하려는 것은 경전의 권위보다 그 권위가 지향해야 할 ‘케노시스’(자기 비움)의 윤리, 곧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연민과 실천이다. 이스라엘 예언자들이 일관되게 겨눈 것은 약자를 외면한 부와 권력이었고, 예수 또한 가장 작은 자에게 한 일이 곧 자신에게 한 일이라고 가르쳤다. 일신교에 뿌리를 둔 종교와 국가들의 폭력이 전 세계를 적대의 소용돌이에 밀어넣는 오늘날, 이 책의 문제의식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정치와 성서는 공생적 관계 속에서 공존해야 한다. 그래야 경전이 종교나 정치 기성 체제의 편리한 도구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경전은 기성 체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복음은 본질적으로 전복적이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문자 속에 갇혀버린 경전을 다시 사랑과 실천의 언어로 되돌려놓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성스러움’의 감각을 일깨우는 보기 드문 종교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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