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용접 “제주항공 참사 유해, 졸속 수색 종료에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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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은 지난 3월23일부터 약 한 달간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와 국토교통부, 경찰, 소방, 군 등 관계기관을 상대로 벌인 점검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월12일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문책을 지시한 데 따른 조치다.
점검단은 “항공기 사고 수색·수습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소방·경찰의 미흡한 현장 지휘·감독으로 초기 수색·수습이 불완전하게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여러 기관이 통일된 기준 없이 임의로 수색 구역을 나눠 작업했고, 경험 없는 인력이 충분한 교육 없이 투입되면서 현장 혼선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점검단은 특히 추가 유해 발견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수색 종료 결정이 성급하게 내려졌다고 했다. 전남소방본부는 유해가 계속 발견되던 상황에서 1차 수색을 마쳤고, 전남경찰청은 2차 수색 종료 다음날에도 유해가 나왔는데도 추가 수색 필요성을 검토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상당수 유해가 수습되지 못한 채 현장에 방치됐다.
항철위가 유해가 섞인 잔해물을 관리하는 과정에서도 부실이 확인됐다. 점검단은 “항철위는 미수습된 유해가 포함된 잔해물을 보관·관리하는 과정에서 규정과 매뉴얼을 위반해 잔해물을 장기간 야적·방치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점검단은 사고 수습 과정에서 규정 위반과 관리 책임이 확인된 경찰 1명, 소방 1명, 항철위 6명(국무조정실 2명, 국토부 4명)에 대해 엄정 조치를 요구하기로 했다. 국토부 공무원 4명에 대해서도 항철위 조사의 독립성을 훼손한 책임을 물어 문책을 요구하기로 했다.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매뉴얼 보완에 나서기로 했다.
1980년 초. 유신정권이 붕괴된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폭발하며 이른바 ‘민주화의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편에선 전두환이 중심이 된 신군부가 차근차근 권력 찬탈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4월24일 주요 일간지는 국내 최대 민영탄광이던 강원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에서 광부와 가족 등 5000여명이 폭동을 일으켜 나흘 전부터 사북읍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4일 만에 처음 알려진 이 사태에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 것은 광부들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당했다는 소식보다 노조 지부장의 부인이 두 손을 결박당한 채 광부와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극적인 한 장의 사진이었다.
신군부의 통제하에 있던 언론은 ‘폭도들의 유혈 난동’으로 대서특필했다. 신군부는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벌여 그 다음달 터진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과 함께 집권의 명분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이 ‘사태’의 발발 이전에 있었던 경찰들의 노동 사찰과 차량 돌진, 그리고 사건 이후 벌어졌던 무자비한 보복성 수사와 고문 등 국가폭력의 참상은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사북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고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 힘을 보태고 있는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을 지난달 30일 사북에서 만났다. 황 소장은 “사북사건은 광산 노동자에 대한 공권력의 감시와 도발, 불법 연행·구금, 폭행, 고발 강요, 성고문 등이 점철된 국가폭력의 총제적 전시장”이라며 “수십년 동안 빨갱이로 낙인찍힌 채 서로 반목하며 자신은 물론 가정까지 망가진 피해자들이 구제되는 첫걸음은 국가의 공식 사과”라고 말했다.
- 사북사건과 개인적 인연이 있습니까.
“인근 함백에서 태어나 다섯 살 무렵 사북으로 왔으니 사북이 고향인 셈입니다. 1980년 사북사건이 터졌을 때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광업소에서 일하다가 사건 직전 퇴직했고, 큰형과 작은형은 아버지를 이어 광산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광부 가족이었던 셈이죠. 작은형은 사북사건으로 수배됐다가 나중에 붙잡혀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 사북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 뛰어든 계기가 무엇입니까.
“1981년 고교 1학년 때 사북을 떠났다가 2011년 돌아와 지역 청소년을 융합인재로 키우는 현장교사이자 지역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북을 떠날 때만 해도 이 사건은 ‘부마사태’ ‘광주사태’와 함께 ‘3대 사태’로 불릴 만큼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30년 만에 돌아와서 보니 완전히 잊혀진 사건이 돼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사건 얘기만 나오면 주변에서 부정적인 반응들이 너무 많아 놀랐습니다. 매년 4월21일이면 사북항쟁 기념식이 열리는데, 지역 사람들도 큰 관심이 없고 돌보는 사람도 없어 보였습니다. 사북사건이 너무 왜곡된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느껴져서 제가 38주년부터 기념식 영상이라도 제대로 만들어 보려고 나선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 사북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 <1980 사북>의 기획자이면서 영화 속 내레이터로도 출연했는데요.
“2019년에 사북사건 40주년 기념 영상을 만들려다 영화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박봉남 감독과 함께 사건을 점점 파고들다 보니 알려지지 않은 인물과 사실들이 고구마 넝쿨처럼 계속 나왔습니다. 영화를 통해 사건에 대한 오해를 풀고 피해자 사이의 화해와 지역공동체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2024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여러 영화제에 초청됐고, 지난해 10월 개봉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회에서도 상영을 했고 시민들의 후원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전국에서 꾸준히 상영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사북사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 당시 언론은 광부들의 난동으로 보도했는데, 사북사건은 왜 일어났고, 진실은 무엇입니까.
“사북사건에 대한 언론의 일반적 정의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 어용노조에 반발하여 일어난 광산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과정에서 공권력과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 경찰 1명이 사망하는 등 다수의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흘간의 소요 사태에 집중하는 기존의 정의는 사건을 광부들의 과격한 노동분규로만 규정해 여러 오해와 편견을 낳았습니다. 사북사건은 4월21일 사북광업소에서 노조 동향을 사찰하던 경찰이 광부들에게 발각되자 지프차를 몰고 농성 광부들에게 돌진해 중상을 입히고 달아난 일을 계기로 폭발한 대규모 항쟁입니다. 광부들은 나흘 동안 사북 시내를 점거해 경찰과 대치했고, 무리한 진압 작전 과정에서 경찰 1명이 사망하는 등 사태가 더욱 악화되었지만, 계엄군 투입 직전 극적인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사건은 수습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신군부는 광부들의 폭력 장면을 앞세워 사북사건을 ‘불순분자들에 의한 난동 사태’로 낙인찍고, 노사정 합의를 깨고 수백명의 주민을 잡아가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마을공동체를 파괴했습니다.”
- 경찰 지프차 돌진이 사북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던데요.
“지프차 사건은 학계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등에서도 그저 ‘교통사고’라고 부르거나 중요한 요소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광부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결정적 계기이자 그 자체로 중대한 국가폭력입니다. 당시 광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중앙정보부나 보안사령부, 검찰과 경찰 등 국가 공권력의 통제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어용노조에 항의하는 현장에서 경찰이 사찰을 하다가 차량으로 동료를 깔아뭉개고 도망치는 것을 수많은 광부들이 눈으로 직접 본 겁니다. 그래서 당시 광부들의 첫 타깃은 동원탄좌 사측도, 어용노조도 아닌 사북지서였고, 경찰 지서장이 광부들에게 끌려다니며 폭행당했습니다. 광부들은 사북광업소 객실(안가)에 모여 있던 중앙정보부, 보안부대, 경찰 간부들을 습격했고, 장성경찰서장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광부들은 자기들의 반대편에 국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더 분노했고 감히 대항했던 겁니다.”
-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사북사태’로 불렸고,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는 ‘사북항쟁’이라 하는데, 소장님은 ‘사북사건’이라고 합니다.
“저는 사북사건을 며칠 동안의 노동항쟁으로만 보지 않고, 그 배경이 된 국가의 광산 노동 통제와 사찰, 4월21~24일의 항쟁, 그리고 그 이후 공권력이 저지른 심각한 인권침해와 공동체 파괴로 연결되는 최악의 국가폭력 사건으로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건’은 중립적이거나 유보적인 용어가 아니라, 국가폭력 사건으로서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특정 국면은 ‘항쟁’으로 부를 수 있지만, 좀 더 포괄적인 시야에서 국가폭력 ‘사건’으로 규정할 때 이 일의 의미가 더 잘 드러납니다.”
- 당시 공권력의 불법 체포와 구금, 고문 행태는 어떠했나요.
“보안사가 중심이 된 합동수사단은 그해 5월 사건의 주동자나 관련자로 의심되는 광부와 그 가족들의 명단을 작성한 뒤 일제 검거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지도부들을 회의한다고 속인 뒤 한꺼번에 잡아갔고, 새벽에 사택에 들이닥쳐 광부와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했습니다. 당시 정선경찰서 강당에 임시 조사실이 마련됐는데, 나지막한 합판으로 엉성하게 임시 칸막이를 쳐 놓은 공간에 잡아온 사람들을 집어넣고 온갖 폭행과 고문을 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성고문까지 자행했습니다. 사람들은 동네 이웃이 벌거벗겨진 채 고문받는 모습과 소리를 서로 보고 들었습니다. 진화위에서 인터뷰한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면 남영동에서 물고문을 받았던 저도 충격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 사북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뿐 아니라 그 후손들도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요.
“사건 당시 제 친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연행돼 조사를 받았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전거도 사주고 구두도 사주던 다정한 분이었는데, 고문을 받고 돌아온 뒤에는 때없이 폭력적으로 돌변하곤 했습니다. 사건 이후 가정폭력이 심해지면서 단란했던 가정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결국 이 친구는 고등학교도 못 가고 지금까지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국가폭력이 아버지의 삶을 파괴했고, 그 폭력은 더 약자인 엄마에게 전가되어 대를 이어 가정을 붕괴시킨 겁니다.”
- 사건 당시 광부와 주민들에게 고초를 겪었던 노조 지부장 부인의 가족들과 광부들 간의 화해를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용노조에 불만이 많았던 광부와 주민들이 노조 지부장을 잡으려다 찾지 못하자 그 부인을 끌고와 기둥에 묶어 놓고 입에 담기 어려운 추행을 했습니다. 신군부는 이 장면이 찍힌 사진을 앞세워 대대적인 이미지 조작을 했습니다. 아무리 노조에 불만이 있다 해도 무고한 여성을 그렇게 한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더군다나 이 사건 때문에 사북사건의 본질은 외면받았고, 지금까지 광부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결정적 장애물이 돼왔습니다. 사북사건을 노동항쟁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로 사건의 본질과 무관하다며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사건이 사북사건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그냥 덮어둘 수 없고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노조 지부장 가족들은 이 일에 대해 진솔한 사과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정작 그 짓을 벌인 사람들을 제대로 밝혀내지도 잡지도 못했지만, 당시 어용노조에 맞섰던 광부 이원갑씨가 노조 지부장 가족에게 대신 사과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는 직접 전달되지 않았지만 <1980 사북> 영화로 이원갑씨의 뜻은 전달됐습니다. 그 가족들과 직접 접촉도 계속하고 있고, 지역사회에서도 화해를 중재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 지난해 사건 당시 진압 경찰관들과 광부들이 화해하는 자리가 마련됐다고 하는데요.
“지난해 4월 영월에서 <1980 사북> 특별상영회를 하는 자리에 사북사건 당시 진압에 동원됐던 전직 경찰관들이 초청됐습니다. 그중 한 명은 진압 당시 머리에 돌을 맞아 뇌수술까지 받은 피해자입니다. 이원갑씨는 광부들을 대표해 그에게도 사과를 했습니다. 당시 경찰관들은 사북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상부의 무리한 명령에 따라 진압에 나섰습니다. 그동안 사북사건을 생각하면 무지막지한 광부들과 비오듯 날아오는 돌멩이만 떠올랐는데, 영화를 보고나서야 광부들이 왜 경찰에 적대적이었는지 알게 됐다고 합니다. 머리에 돌을 맞았던 경찰관은 자신들만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광부들이 더 큰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원갑씨와 화해의 포옹을 했습니다.”
- 그동안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이원갑씨 등 여러 명이 국가로부터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28명의 구속자 중 8명이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사건 당시 고문에 의한 거짓자백을 근거로 유죄가 선고됐다는 것이 재심 재판부의 판단이었습니다. 국가를 대신해 피해자에게 사과한다고 말한 재판장도 있었습니다. 재심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 진화위에서 두 차례나 사북사건이 명백한 국가폭력이라고 인정했는데요.
“2008년 진화위는 구속 피해자들이 낸 구제 신청을 심의한 끝에 사북사건이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며 진실 규명을 결정했습니다. 합동수사단에 불법 연행돼 고문받고 풀려났던 피해자들이 중심이 돼 2024년 2기 진화위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여기에서도 추가 조사를 통해 심각한 국가폭력 사건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국가 사과와 배상, 기념사업까지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국가의 사과나 후속 조치는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 국가의 사과를 꼭 받아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두환 신군부가 만들어낸 프레임으로 이 사건은 폭력 난동 사건으로 낙인찍혔고,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당하면서 국가폭력 사건의 진실은 감춰져 있었습니다. 피해자들 사이에 반목도 컸습니다. 같은 피해자인 광부들과 노조 지부장 가족들 간도 그렇고, 합동수사단에서 고문을 받으면서 무고한 동료를 고발한 사례들도 많아 서로 평생 원수로 지내기도 합니다. 광부와 가족들은 피해자인데 오히려 폭도, 빨갱이라는 욕을 들으며 입을 닫아야 했습니다. 국가가 먼저 사과를 하면 피해자들의 상처가 아무는 데 도움이 되고 반목하던 피해자들 간 화해의 계기도 마련될 수 있습니다.”
- <1980 사북>에 등장하는 피해자들 중 벌써 고인이 되신 분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촬영 때부터 6년이 지난 현재까지 영화에서 증언한 피해자들 중 7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합동수사단의 성고문을 증언했던 이명득씨, 동료를 고발하라는 강요와 함께 고문을 당했던 강윤호·이완형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많은 피해자가 한을 품고 세상을 등지기 전에 하루빨리 국가의 사과가 나와야 그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화해의 장도 마련될 것입니다.”
- 사북 거리 곳곳에 국가 사과가 필요하다는 플래카드가 보입니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여러 단체에서 내걸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잊혀져 있던 사북사건이 이제 다시 부상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 여야 의원 73명이 공동 발의한 사북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지역사회가 환영하면서 대통령의 화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지난해 11월 사북항쟁 45주년 기념식에서 김민석 국무총리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진심어린 사과를 전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겠다”고 했는데, 아직 후속 조치가 없습니까.
“원래 사북항쟁 기념식은 매년 4월21일 열리는데, 지난해에는 대통령의 사과를 받기 위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인 10월로 연기했습니다. 정부 출범 후 사북사건에 대한 국가 사과가 필요하다는 학계, 예술계 인사 1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무조정실을 찾아갔지만 처음엔 문전박대 수준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사북사건을 알고는 있지만 국가가 사과를 권고받은 것이 너무 많은데, 그것들을 일일이 다 사과하지는 못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다 영화 <1980 사북> 상영이 본격화되면서 국무조정실에서도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연기된 기념식에서도 정부의 공식 사과는 나오지 않았고, 대신 김민석 총리가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올해도 지난달 21일 예정됐던 46주년 기념식까지 국가 사과를 기다렸는데, 끝내 나오지 않아 기념식을 연기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있으리라 믿고,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사북 사람들이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하며 <1980 사북> 영화도 같이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는 남을 위해 추천사나 서문을 쓴 적이 없다.” <토지>의 박경리가 “참된 예술가에 대한 존경”이라며 어떤 책에 쓴 추천사의 일부다. “연두색과 연갈색이 주조인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수직(手織·손으로 직물을 짜는 것)의 무명 같은 것, 그런 해뜨기 전의 아침을 느낀다.”
너비 3m인 타원형 부직포 한가운데에 붉은 기운이 감돈다. 그 위로는 어두운 파란색이, 아래로는 연두색과 갈색이 서서히 나타난다. 이 그림의 이름은 ‘하늘의 토지’. 박경리가 타계한 2008년에 이를 그린 작가는, 박경리가 ‘참된 예술가’라 칭했던 방혜자(1937~2022)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방혜자-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는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해 온 ‘빛의 작가’ 방혜자의 회화, 조각 등 67점을 공개하는 회고전이다. 국내 국공립 미술관에서 열리는 방혜자 첫 개인전으로, 한불 수교 140년을 맞아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세르누치박물관 등에서 소장하던 방혜자의 작품 40여점을 대여했다.
방혜자는 우주와 빛을 화폭에 그리고, 글로도 써온 작가다. 전시 제목은 방혜자의 시 ‘빛을 찾아서’의 마지막 두 행이다. 그는 여러 수필집도 남겼는데, 박경리가 남을 위해 처음 썼다는 추천사는 2001년 방혜자가 쓴 <마음의 침묵>을 위한 것이다. 박경리는 방혜자가 작품에서 자주 쓰는 ‘연두색과 연갈색’을 짚고, “우주적이고 유현(幽玄·깊고 그윽)하다…크고 깊은 그의 그림세계가 신기하기만 했다”고도 했다.
전시는 박경리의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어두운 배경 한가운데, 혹은 곳곳에 보이는 밝은 빛의 그림은 절로 우주를 떠올리게 한다. 거친 질감의 한지를 구겨 표면에 굴곡을 만든 뒤 천연 안료를 칠하면 독특한 무늬가 드러나는데, 이것 또한 천체의 표면을 생각하게 한다. 1997년부터는 부직포에도 그림을 그리면서 질감을 더욱 독특하게 표현했다. 너비 2m가 넘는 둥근 부직포에 푸른 배경과 노란 점을 찍은 ‘우주의 빛’(2002)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지름 1.79m인 원 가운데부터 밖으로 다른 색의 동심원을 그린 ‘하늘의 땅’(2011)은 전시의 대표작이자 방혜자가 즐겨 사용한 표현의 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방혜자는 1996년부터 프랑스 남부 루시용에서 나는 붉은 흙을 작품의 재료로 삼기 시작했다. 이 전에도 작품에서 연갈색을 즐겨 사용했던 방혜자가 ‘우주의 빛’(1997)에서 보듯 땅의 색을 더욱더 또렷하게 표현한 것은 그때부터다. 닥종이에 아크릴 물감과 천연 안료로 그린 ‘제목 없음’(1992년)에서는 검은색과 연녹색이 돋보이는데, 개울가에서 조약돌과 수초를 바라보며 ‘빛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던 어린 방혜자의 경험이 묻어나는 듯한 그림이다.
전시에 소개된 최근작의 제목 ‘빛의 숨결’(2021)인 것에서 보듯, 방혜자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빛을 좇았다. 빛이 통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스테인드글라스도 제작했다. 프랑스의 세계유산 샤르트르 대성당에는 방혜자가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4점이 2022년부터 설치됐다. 전시에는 그중 한 점인 ‘빛의 탄생’의 재현품이 전시돼 있다. 중앙부의 둥근 원과, 거기서부터 뻗어 나오는 선이 짝을 이뤄 태양처럼 보이는데, 한지의 한 부분을 움켜 들어 올리고 그 주위를 구기는 방혜자 특유의 표현 양식과 닮았다. 방혜자가 평생 그려온 우주에 진짜 빛이 맞닿아 하나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전시는 한국전쟁 직후 앵포르멜(비정형 미술)의 영향을 받아 어둡게 그린 추상화부터, 박경리의 추천사 원고, 이응노가 쓴 편지 등 방혜자가 당대 예술가들과 교류한 흔적들도 함께 공개한다.
전시는 9월27일까지. 관람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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