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K브랜드’ 2800억원어치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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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은 지난해 단속된 수출입 관련 지식재산권 침해 범죄 규모가 총 2789억원으로 전년(1705억원)보다 64% 급증했다고 4일 밝혔다.
적발 품목별로는 의류(1206억원)가 가장 많았고, 가방류(438억원), 신변잡화(405억원), 가정용 전기·전자제품(170억원), 완구·문구류(54억원) 순이었다.
관세청은 이에 5월 가정의달과 여름휴가철 등 소비 수요가 집중되는 시기를 앞두고 4일부터 6월 말까지 전국 34개 세관에서 ‘지식재산권 침해 범죄 특별단속’을 실시한다.
이번 단속은 식품·의약품·화장품·건강기능식품류를 비롯해 생활용 전자제품, 완구·굿즈, 의류, 가방 등 신변용품의 수입·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식재산권 침해 전반을 대상으로 한다.
관세청은 그간 지식재산권 침해 범죄의 주요 표적이 해외 유명 브랜드에 집중됐지만, 최근 뷰티·식품·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K브랜드 인기가 급속도로 높아지면서 관련 위조상품의 밀수입과 유통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번 단속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특별단속에서 관세청은 온라인 라이브 방송·SNS를 통한 불법 유통 정보 수집과 추적을 강화하는 한편, K브랜드 침해가 의심되는 온라인 판매자에 대한 모니터링과 정보 분석도 병행할 계획이다. 단속 기간 중 각 세관에는 전담수사팀이 꾸려지며, 혐의자를 선별해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이명구 관세청장은 “지식재산권 침해 범죄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국내 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해치고 소비자의 안전과 건강까지 위협한다”며 “국민을 보호하고 국내 유망산업을 지키기 위해 정보 분석과 기획 단속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후백제 건국 전 이미 시작된 혼란왕건의 마지막 전투까지 50년 세월재해와 기근 반복에 도적 떼 창궐
삼한 통일을 목표로 한 전쟁 속에수많은 생명의 희생 번뇌한 왕건“살생 원하지 않지만 자비는 재앙”
승려 이엄의 답변은 ‘제왕의 길’다만 백성을 불쌍히 여기라 당부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용맹한 함성이 나니와 연안을 가로지른다. 싸우자. 싸우자. 그것이야말로 구원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함성이 사람들을 고무한다. 전국시대를 연 오닌의 대란으로부터 어느덧 백 년, 전국 방방곡곡 전쟁이 없는 땅은 없어 수많은 집들이 생겨나고 또한 사라져갔다. 기아와 질병, 전쟁은 … 현세를 고통으로 채웠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힘차게 전진하라, 싸우다 죽으면 극락왕생이 보장된다.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이다! 함성은 끝도 없이 되풀이되었다.”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가 지은 <흑뢰성>(김선영 옮김, 2022)의 첫머리를 옮겨보았다. 이 책은 일본 전국시대의 한복판인 1578년의 겨울, 무장 아라키 무라시게가 아리오카성을 근거로 주군 오다 노부나가를 상대로 반기를 든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한다. 1년 정도의 농성 기간 중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작가가 묘사한 일본 전국시대의 모습에서 우리 후삼국시대의 향기를 느꼈다. 후삼국시대란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한 시점부터 고려 태조 왕건이 삼한 통합을 이룬 936년까지 시기를 지칭한다. 하지만 시대의 혼란은 그보다 앞선 시기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신라 하대 지방 민란의 서막으로 여겨지는 889년 원종·애노의 난이 대표적이다. 가뭄 등으로 고통받는 자신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세금을 독촉하는 정부에 대항하여 이들은 사벌주(현 경북 상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신라 하대 지방 민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로부터 태조 왕건의 마지막 전쟁이 끝나기까지의 세월이 근 50년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채 80년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50년’이라는 세월의 길이에 대한 감이 올 것이다. 이러한 지방 곳곳 민란의 근저에는 재해가 도사리고 있었다. 가뭄과 홍수로 기후는 널뛰고 기근이 반복됐다. ‘고통으로 가득한 현세’, 그런 시절이었다.
고통으로 가득한 현세
교과서에선 이 시대에 대해 ‘지방에서는 호족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력이 성장’하여,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이라 칭하면서 ‘지방의 행정권과 군사권을 장악’했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이 서술은 너무 무미건조하다. 견제하거나 통제해주는 상위 권력 없이 지방세력이 난립하는 상황이란 사실상 도적 떼가 창궐하는 세상이나 다를 바가 없다. 궁예가 처음 투탁했던 죽주(안성)의 기훤, 북원(원주)의 양길 등이 이런 도적들이었고, 병사를 이끌고 명주(강릉)로 쳐들어간 궁예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다. 이런 난세에는 기근이 닥치면 평범한 사람들도 옆 동네 쌀을 약탈하려 도적으로 돌변하기 마련이다. “들판이 전쟁터가 되니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짐승같이 행동했다.”(해인사 길상탑비)
당대의 명성 높은 승려 윤다(864~945)는 실제 이런 도적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자신이 묵고 있던 절방으로 밤중에 쳐들어온 산적들이었다. 윤다는 그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데다 설법으로 감화시켜 얌전히 돌아가게 했다. 비록 고승의 ‘무용담’으로 끝나긴 했지만, 사람 많은 사찰에 머문다 해도 안전할 수 없던 시대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선승 여엄(862~930) 역시 온 나라에 안전한 곳이 없어 머물 곳을 찾기 힘들어했으며, 선승 이엄(870~936)은 김해 쪽에 정착했으나 영 안전을 확신할 수 없어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했다.
전란의 시대에 사람들이 모여 살 만한 곳은 바로 위험한 도적의 소굴이 되기에 십상이었다. 문경 일대의 지방세력이던 심충은 명성이 높던 지증대사(824~882)를 초빙해 희양산의 땅을 살펴봐달라고 부탁했다. 땅을 보고 온 지증대사는 “이 땅은 승려의 거처가 되지 않는다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라고 평하며, 절을 개창하기로 한다(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지금까지 이어지는 문경 희양산 봉암사는 바로 도적 떼의 소굴이 되지 않게 하려는 목적에서 개척된 곳이다.
당대 사람들은 이런 난세를 부처님의 말씀이 사라진 시기, 즉 말법의 세상이라고 인식했다. 이런 시대 많은 이들은 구세주를 갈망했다. 도솔천의 미륵보살이 이 땅에 내려와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하며 다시 새로운 불법의 치세를 열어주기를, 그 이전까지는 지장보살이 도탄에 빠진 우리를 구제해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추상적인 존재를 숭배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왔다는, 도력 깊은 승려들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모여들었다. 이 시기 명성을 떨친 승려 여럿이 보살로, 혹은 부처로까지 추앙받곤 했던 것은 그러한 사람들의 기대를 반영한다.
‘일통삼한’의 전쟁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일통삼한(一統三韓), 쉽게 풀이하면 삼한을 통일한다는 의미다. 후백제, 후고구려 등으로 분열된 이 삼한 땅을 다시 통일한다는 거창한 선언. 견훤과 왕건은 이 기치를 세우고 전쟁을 벌였다. 승자는 쉽게 결정되지 않았다. 대구 팔공산 일대에서 벌어진 공산 전투(927)에서는 왕건이 직접 이끈 최정예 기병 5000명이 거의 괴멸됐다. 왕건 자신도 죽을 뻔했으나 신숭겸의 희생으로 간신히 빠져나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안동 일대에서 벌어진 고창 전투(929)는 또 어떠한가.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약 2개월간 이어진 전투에서는 견훤의 군대에서 8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충남 홍성 일대의 운주 전투(934)에서는 후백제 부대 3000여명이 죽거나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사료가 없어서 그렇지, 병사 이외에 일반 주민이 얼마나 죽었는지는 알 수도 없다.
아무리 ‘일통삼한’이라는 원대한 기치를 올렸다곤 하지만, 불교 신앙심이 독실했던 시대다. 살생을 금기시하는 불교적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던 이들 중에 이렇게 수없이 반복되는 죽음과 죽임을 고민하는 이들은 없었을까? 다행히도 최후의 승자 왕건의 기록에서 그 고민의 자취를 볼 수 있다.
왕건은 명성을 떨치던 곳곳의 승려들을 초빙하고 설법을 들으며,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그중 이엄에게 던진 그의 질문은 꽤 구체적이다. “약 36년 동안 2명의 흉악한 자(궁예와 견훤)가 있어, 비록 살리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반대로 자꾸 죽이고 있습니다.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비의 마음을 지니고는 있지만, 살생을 주저하거나 적을 방치해두면, 나라는 물론 저까지 위태롭게 하는 재앙을 부를까 두렵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자비심 하나로 압축될 수 있으나, 전란의 시대에 함부로 발동하는 자비심은 나라는 물론 자신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왕건의 질문. 자비와 살생 사이에서 번민하는 자의 절실한 물음이다. 이에 대한 이엄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이엄은 이렇게 답했다. “제왕과 평범한 사람이 가는 길은 다릅니다. 임금께서는 군사를 동원해 적과 싸우더라도 항상 백성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왕이란 본래 사해를 집으로 삼고 만민을 아들로 여겨, 무고한 사람은 죽이지 말고 죄가 있는 무리만을 엄선하여 다스려야 합니다.” 그는 제왕과 필부의 길은 다르다고 선을 그으며, 살생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왕건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 다만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잊지 말고 죄가 있는 무리만 엄선해서 다스리라면서, 그의 자비심을 고취하고 고민을 위무한다(광조사 진철대사 보월승공탑비).
마침내 ‘일통삼한’의 목표를 달성한 후, 왕건의 질문은 바뀐다. 그는 이제 죽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그는 윤다에게 “하늘의 도움을 받아 난세를 구제하기 위해 흉포한 무리를 주살하였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생민(백성)을 잘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윤다는 “오늘의 그 묻는 마음을 잊지 않으시면 국가가 부강하고 생민이 매우 행복할 것입니다”라며 초심을 지키라고 충고한다(태안사 광자대사탑비).
위업을 달성한 왕건은 자신이 죽인 이들이 모두 ‘죄 있는 무리’임을 확신했을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직간접적인 죽음의 업보에 대해서는 더는 고민하지 않았을까? 임종 시점에 ‘인생은 원래 덧없는 것’이라는 한마디를 남긴 그는 자신의 극락왕생을 믿었을까? 왕건의 내면도 궁금하지만, 진정으로 궁금한 것은 다른 부분이다. 왕건처럼 질문하고 답을 들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도적 떼가 창궐한 시대를 살고 또 죽어간 이들의 내면. 요네자와 호노부의 <흑뢰성>은 바로 이들의 내면에 대한 상상에서 구성된 소설이다. 그러나 그 옛날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에 대한 상상이 어디 소설 한 편만 만들겠는가. 오늘날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란의 참극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가다듬게 할 것이다.
[주간경향] “이제 AI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잖아요. 지금 아이들은 스스로의 탐구를 통해서 어떻게 자신의 가능성을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는 공동체 교육 방식이 맞을 것 같았습니다.”(김두만씨)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김씨는 ‘공동체 교육’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씨의 아이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도토리마을방과후 마포 협동돌봄센터에 다닌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도토리마을방과후는 부모와 교사들이 협동조합으로 꾸린 공동체로, 학교 밖 초등학생 돌봄 기관이다. 현재 초등학생 45명, 부모 88명, 교사 7명이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
지난 4월 28일 저녁, 이곳에서 부모와 교사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입 조합원 교육이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AI 시대에 사교육 없이 아이를 교육하는 일, 도토리마을방과후의 교육 철학인 ‘아이가 아이답게 자란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AI 시대,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도토리마을방과후 아이들은 하교 후 ‘터전’이라 부르는 센터 건물로 모인다. 학교에서 걸어서 5분 남짓. 오후 6~7시 집에 가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한다. 책을 읽은 후 주변 공원이나 놀이터, 학교 운동장에서 공동체 놀이나 공놀이 등을 한다. 산에 오르거나, 택견을 배우거나, 이웃 어르신 집에 방문해 간식을 전달하기도 한다. 놀이가 끝나면 간식을 먹고, 설거지와 뒷정리는 직접 한다. 아이들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기도 하는데, 최근 ‘티볼’(야구 변형 게임) 동아리가 생겼다. 연령통합, 장애·비장애 통합 생활을 한다.
이날 교육에선 5학년 자녀를 도토리마을방과후에 보내고 있는 안소희씨가 선배 조합원으로서, 또 20년째 교사로 일하면서 느낀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최근 학교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쇼츠’와 같은 강력한 자극이 아니면 아이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휴대전화를 보며 밥을 혼자 먹는 아이들이 늘고 있고, 학기 초에 새로운 친구들 사이에서 낯설고 어색한 느낌을 견디지 못해 휴대전화로 숨는 아이들의 모습을 자주 본다”고 했다. 그러다 어떤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무너지고,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안씨는 “미디어 노출이 일상화되고, AI 시대가 발전한 시대에 아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나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며 “호기심이 있어야 자기를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 힘은 놀이와 관계를 맺어가면서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놀이와 관계 맺음은 공동체 교육에서 지향하는 핵심 가치다. 안씨의 첫째 아이 역시 도토리마을방과후를 다녔고,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중학생이 되면 사춘기를 겪고 학습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부모와 친구들과 깊은 수준의 교류가 어려워지더라”며 “그런 교류 경험을 할 수 있는 때는 초등학생 시기라는 걸 절감한다. 첫째 아이는 도토리마을방과후를 다니면서 놀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부모, 교사, 교육 전문가 모두가 급변하는 시대에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고 교육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대학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입시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사교육 시장은 꿈쩍하지 않는다.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는 27조5000억원.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4.4%(주당 7.4시간), 월평균 사교육비는 1인당 51만2000원이다. 더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노출되는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고비용에도 영어학원 유치부(영어유치원)가 인기를 끄는 건 ‘우리 아이가 뒤처질까’ 하는 부모들의 불안 심리가 작용한다.
도토리마을방과후 부모들은 아이들의 사교육을 지양한다. 교과 학습과 예체능 활동을 온전히 배척한다기보다는, 아이들의 놀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선행학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남들 다 하는 선행 위주의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유별나다”고 하고, 누군가는 “무책임하다”고 한다. 이런 선택에 고민은 없을까. 올해 2년째 도토리마을방과후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권송씨는 “제가 자랄 때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 스스로 취향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며 “아이는 자기 시간을 보내면서 취향을 알고 살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닌 권씨의 자녀는 한글을 떼지 않은 상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기 초 공개수업 날, 친구 이름을 쓰는 빙고 게임을 하길래 권씨는 내심 걱정했다고 한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가서 “이름 좀 적어줘”라고 말한 뒤 게임에 잘 참여했다. 권씨는 이웃 어른과도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아이를 보며 공동체 교육을 통해 학교생활을 잘해나갈 힘을 키웠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부모들이 꼭 자녀의 ‘뛰어난 학업 성취’를 바라서 사교육을 선택하는 건 아니다. 방과 후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녀의 돌봄과 사회성 발달을 도울 기관을 찾았다는 김영은씨는 올해부터 3학년이 된 아이를 도토리마을방과후에 보내고 있다. 그는 “흔히 말하는 ‘대치동 사교육’을 제외하고 보면, 예체능 활동이나 돌봄 등 사교육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기능으로 열려 있는 것 같다”며 “우리 아이는 1~2학년 때 조부모 돌봄, 공부방, 학교 방과 후, 사교육 뺑뺑이까지 다 해봤다. 부모들에게 선택지가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란다는 건
현재 초등 방과 후 돌봄으로는 학교 안에 돌봄교실, 늘봄교실, 방과 후 프로그램이 있다. 학교 밖에는 정부·지자체가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 다함께돌봄센터가 있다. 민간에선 주로 학원이 돌봄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민간 돌봄 기관이 있는데, 도토리마을방과후가 여기에 속한다. 부모 출자금과 조합비로 운영한다. 비영리 기관이고, 돌봄이라는 공공 기능을 수행하는데도 공적 지원은 받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아동복지법이 개정 시행되면서 협동돌봄센터라는 이름으로 법제화가 이뤄졌다.
다른 돌봄 기관의 차이는 무엇일까. 교사대표인 장영진씨는 “보통 아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시간을 채우는 기관들이 있고, 거기서 아이들 학습과 보호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다만 생활이라기보다는 이동과 과제 수행의 연속으로 구성돼 있다”며 “도토리마을방과후에서는 학습과 프로그램의 나열이 아니라 아이들이 머물고 관계를 맺고 경험을 쌓아가는 생활의 시간을 채우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혼자 자라지 않고 친구, 어른, 마을 속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란다”는 것은 아이가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받고,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충분히 놀고 사랑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장씨는 설명했다.
이 같은 공동체 교육을 경험하는 아이가 많지는 않다. 교육·돌봄의 핵심 기관인 학교에서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날로 줄어들고, 하교 후 아이들은 여러 돌봄 기관과 사교육 현장에서 뺑뺑이를 돈다.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라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장씨는 “그동안 아동정책은 아동의 시선이 아니라 어른 중심으로 바뀌어왔다”며 “예를 들어 학교에서 돌봄 시간을 확대한다는 취지에서 도입한 늘봄교실의 경우 밤 시간대까지 운영한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과연 좋은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돌봄의 양과 질을 고려해 부모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초등학생 1학년 자녀를 둔 고동현씨의 말이다.
“돌봄 인프라를 확충하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부모들이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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